2000년대 들어 국제유가의 변동성이 심화되면서, 국내 휘발유가격의 비대칭적 움직임에 대한 논란이 계속 되고 있다. 본 연구는 세계 최대의 휘발유 유통시장인 미국에서 휘발유가격의 비대칭성에 대한 논란 및 대응 사례 분석을 통해 우리나라의 휘발유가격 비대칭성 논란에 대한 정책적 시사점을 발굴하려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미국의 석유시장은 생산에서부터 소매까지 다양한 형태의 시장 참여자가 존재하는 경쟁적 시장이다. 석유기업간의 활발한 합병 혹은 인수로 시장집중도는 계속 높아지고 있다. 반면, 휘발유 소매시장에서는 하이퍼마켓의 참여 등으로 오히려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대부분의 석유회사들은 소매가격 결정에서 경쟁회사의 판매가격을 가장 중요하게 고려한다. 브랜드유 거래 시에는 지역소매시장에서 경쟁가능한 가격을 먼저 설정하고, 주유소 마진과 세금을 제외하는 방식으로 도매가격을 정한다. 따라서 소매가격이 오르내림에 따라 수익 또는 손실을 보는 것은 정유회사이다. 미국의 휘발유 가격 수준은 국가적 차원에서는 국제원유가격, 정제비용 등의 영향을 받고, 광역권 차원에서는 지역적 공급 접근성 및 주정부의 환경 규제의 영향을 받으며, 소매지역 차원에서는 주유소 밀집도, 판매형태 등이 영향을 미친다. 그 중에서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가격의 약 60%를 차지하는 국제원유가격이다.
2000년대 들어 미국에서 휘발유가격의 급등이 정치 사회적으로 이슈가 된 경우는 크게 3가지로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2000년 및 2001년 봄철 미국 중서부지역을 중심으로 한 휘발유가격 급등이다. 두 번째는 2005년 발생했던 허리케인 카트리나와 리타의 영향으로 전국적으로 휘발유 가격이 급등하였을 때이다. 세 번째는 2000년대 중반이후 다양한 국내외적인 요인들의 복합적인 영향으로 앞의 두 번의 경우보다 기간이나 폭에서 더욱 강력한 가격상승이 왔을 때이다. 이러한 휘발유가격 상승에 대해 소비자들은 정책의 부재를 주장하며 정부가 어떤 조치를 취해 줄 것을 요구해 왔다. 이에 따라 정부와 의회는 가격급등 원인 및 반경쟁적 시장행위 여부에 대한 다양한 조사분석 활동을 수행하는 한편, 에너지정책의 새로운 방향을 수립하는 등의 대응을 해 왔다.
휘발유가격의 비대칭적 움직임에 대해서는 학술적인 의미에서 휘발유 가격 비대칭성을 입증하고, 그 원인에 대해 이론적으로 설명하려는 연구가 현재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정부나 의회에서는 비대칭성 문제에 대해서는 거의 거론조차 안하고 있다. 그 이유는 EIA 등 정부기관에서는 이미 1990년대 말에 비대칭성 문제에 대해 직접적으로 분석을 실시하였고, 그 결과 대체로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 비대칭성의 증거는 분석에 사용된 데이터의 종류 및 분석모델의 형태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 가격 비대칭성이 존재하고 있는 부분도 나타나고 있으나, 패턴상의 비대칭성이고 양적인 비대칭성은 없다.
- 이러한 비대칭성이나 가격의 급상승이 석유기업의 의도적인 담합행위나, 불법적인 과도한 이윤추구 행위에 의해 발생했다는 명백한 증거를 찾을 수 없다.
가격비대칭 현상에 대한 학술적인 연구결과에서도 가격비대칭이 휘발유 시장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반드시 비경쟁적인 상황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는 이론적 설명도 많이 나오고 있다. 소비자탐색비용, 굴절수요곡선, 에지워스 싸이클(Edgeworth Cycles), 기업의 메뉴비용(menu cost) 등이 그것이다.
이에 따라 미국 정부나 의회에서는 2000년대에 들어 가격의 치솟음 현상이 과거보다 더 심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격급상승의 원인을 해결하려는 노력과 불법적인 시장행위를 방지하려는 노력에 더 중점을 두고 있다. Peltzman (2000)이 말한 대로 비대칭성이 "양식화된 사실"이고 불법적인 시장행위에 의해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면, 정책측면에서 비대칭성 자체를 문제시 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 의회에서 몇 년에 걸쳐 수많은 가격부풀리기금지 법안이 제안되었지만, 결국 시장친화적이 아닌 정책의 시행이 가져올 수 있는 부작용이 걸림돌이 되어 입법화가 되지 못했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이다.
미국이 취하고 있는 대표적인 정책대응은 장기적인 휘발유시장 안정화를 위한 공급능력 증대, 대체연료의 공급확대 및 연료소비절감이다. 이와 함께 휘발유시장에서 반경쟁적인 행위에 의한 가격왜곡 현상을 방지하기 위해 석유시장을 감시하는 체제를 강화하고 있다.
이러한 미국의 휘발유가격 급등과 대응사례 분석을 통해 우리나라의 정책 및 제도에 반영할 수 있는 시사점을 아래와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째, 가격비대칭성의 존재 자체를 문제시하는 것보다는 비대칭성이 반시장적 행위에 의해 발생하는 것인지에 대한 정밀한 판단을 통해, 시장독점화나 반시장적 행위의 근절을 위한 논의로의 접근이 필요하다.
둘째, 한국의 휘발유 시장은 미국 시장에 비해 시장집중도가 높은 구조이므로, 반시장적인 행위에 의한 가격비대칭성의 발생을 방지하기 위해 시장 집중화를 완화하고 경쟁여건을 강화해야 한다.
셋째, 정상적인 시장 수급요인에 의한 휘발유 가격급등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소비자와 공급자가 상승하는 가격을 바탕으로 새로운 균형점을 찾아갈 수 있도록 하는 시장친화적인 정책기조를 유지하여야 한다.
넷째, 단기적인 소비자 부담해소를 위한 조치보다는 장기적인 시각에서 공급능력 확충 등 휘발유시장을 안정화할 수 있는 정책을 시행하여야 한다.
결론적으로 시장친화적인 정책기조를 바탕으로 수급안정화를 위한 공급능력 확대에 힘써야 할 것이며, 현재의 시장 집중화를 완화하거나, 미래의 시장 집중화를 방지하기 위해 시장감시를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